사회적 재구성 - 세대 교체?
최근의 사회적 변화 속에서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집단적 전환과정을 목격하곤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집단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겪는 변화의 과정은 다양한 사례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한 사회가 기존의 억압적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물리적 이동 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재구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종교적 색채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례가 모세의 이야기 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현재의 이집트)을 탈출한 후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도달하는 데 40년이 걸린 과정은 이러한 집단적 전환의 복잡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40년이 걸렸다고 하면 우선 떠올리는 건 '거리가 엄청 멀었나부다' 일 겁니다만,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직선 거리로는 약 300km 정도로 보통 걸어서 2~3주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결국, 가나안에 들어 가는 데 40년이 걸린 이유는 단순히 물리적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어난 심리적,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 변화와 도전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일 것입니다.
1. 집단적 혼란과 불신
탈출 직후의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기간 노예로 살면서 독립적인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신뢰와 협력이 필요했지만, 오히려 내적 갈등과 불만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지도자인 모세에 대한 불신과 과거의 삶에 대한 향수를 반복적으로 드러냈고, 이는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2. 적응과 훈련의 시간
광야에서 40년은 단순한 방황이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과 규범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기간 동안 새로운 생활 방식과 규율을 정립하고, 외부 위협에 대처하며 자립심을 키웠습니다. 이는 단순한 생존이상의 훈련과정이었습니다.
3. 세대 교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은 오랜 기간 노예로서 살아오면서 과거의 억압적 체제에 깊숙히 적응한 상태였습니다. 이들 세대는 기존의 익숙한 방식에 의존하며, 새로운 환경과 삶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광야에서 태어나 광야에서 성장한새로운 세대는 노예의 기억이 없어서 과거의 억압적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웠고,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사고를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적 변화는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제공했으며, 이는 사회적 재구성을 이루는 핵심적인 과정으로 작용했습니다.
4. 지도자의 결정적인 사건
모세는 뛰어난 지도자였지만, 모든 결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사건에서는 판간 실수나 갈등이 있었고, 이는 전진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또한 단일 지도체제에서는 한 사람의 리더십에 많은 부담이 쏠릴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5. 환경적 요인
광야라는 특수한 환경도 중용한 요소입니다. 제한된 자원과 거친 자연 속에서 이동과 정착은 단순한 경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연결된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이 환경은 자연스럽게 이동 속도를 늦추고, 더 많은 계획과 조율을 요구했습니다.
결론
40년의 시간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실패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는 집단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긴 여정은 목적지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배움과 적응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목표를 향한 긴 여정을 바라 볼 때 필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이제는 이 사례에서 나오는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사고를 통해 미래를 개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암울했던 시기에 민주화를 위해, 경제 발전을 위해 저마다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청춘을 갈아 넣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랬기에 난 지금에 "기득"을 해야 한다는 건 맞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누가 더 잘 설계해 나가고 희망적인 미래의 주역으로서 이끌고 나갈 것인가의 관점에서, 애굽의 노예처럼 저마다 가슴한 켠에 '한'을 품고 사는 세대는 이제 더 큰 미래를 창조해나갈 세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그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위치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이유로 속타는 마음 잠시 내려놓고 내 자식, 내 손주가 살아 갈 세상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