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마음을 읽다

《원더스트럭》 - 우리는 그 침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CINEMIND 2025. 4. 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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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마음을 읽다

 

어떤 감정은 말하지 않아도 깊이 전해집니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어도, 그 감정은 여전히 자라고, 울고, 꿈꿉니다. 우리는 그 침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전할까?
우리는 종종 말을 통해 감정을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감정은 말로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들리지 않는 마음, 말해지지 못한 상실, 그리고 기억 속에서만 이어지는 사랑.
오늘은 그런 감정이 어떻게 영화 속에서 '형태 없는 목소리'로 살아 숨쉬는지 함께 느껴보려 합니다.

영화 《원더스트럭 (Wonderstruck, 2017)》은 두 명의 청각장애 아이가 5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공간과 기억 속에서 조우하는 여정을 그립니다. 말 없는 장면 속에 숨은 수많은 감정들이, 어떻게 마음을 전하고, 또 치유를 만들어내는지 바라보게 됩니다.

🎥 영화 정보

 
• 제목: 원더스트럭 (Wonderstruck)
• 감독: 토드 헤인즈 (Todd Haynes)
• 개봉: 2017년 / 미국
• 장르: 드라마, 가족, 미스터리
• 주요 출연: 밀리센트 시몬즈(Millicent Simmonds), 오크스 페글리(Oakes Fegley), 줄리언 무어(Julianne Moore)

이 영화는 1927년과 1977년, 두 시대를 살아가는 청각장애 아이 ‘로즈’와 ‘벤’의 시점을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고,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해 나가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 영화 Story 전개

 
영화는 두 아이의 시점을 교차로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1977년, 미네소타의 소년 ‘벤’은 어머니를 사고로 잃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천둥 번개로 청력을 잃은 그는 어머니의 책장에서 발견한 뉴욕의 서점 엽서를 단서 삼아, 무작정 도시로 향합니다.

반면, 1927년, 뉴저지의 소녀 ‘로즈’는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지닌 채 살아갑니다. 가족과의 소통은 거의 단절되어 있고, 유일한 희망은 침묵 속에서 동경하는 여배우 리리아 메이. 그녀를 보기 위해 뉴욕으로 몰래 떠나는 로즈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두 아이는 5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도시, 같은 박물관, 같은 건물을 걷지만 서로를 만나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는 두 개의 감정이 어떻게 공간 속에 겹쳐지고, 말 없는 존재들이 어떻게 ‘기억의 언어’로 연결되는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벤은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로즈가 과거에 만들었던 미니어처 전시와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관람자였던 그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후속자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로즈와 연결됩니다. 그녀는 이미 나이가 든 할머니가 되어 있었고, 오직 시각적 매체(미니어처 모델, 사진, 손짓, 스케치)를 통해서만 둘은 마음을 나눕니다. 언어는 없지만, 감정은 전달되고, 말하지 않아도 상실과 그리움, 그리고 치유의 여정은 이어집니다.

🧠 심리학적 이론 배경

 
사람은 상실을 겪을 때, 반드시 '말'로 애도하지는 않습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워든(William Worden)의 '애도 과업 모델(Tasks of Mourning)'에 따르면, 진정한 애도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재구조화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청각이 결핍된 상태에서는 이 감정의 '배출 통로'가 제한됩니다. 말을 하지 못하고, 들을 수 없다면,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고, 전달하며, 연결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감각결핍에 따른 정서 처리의 왜곡이라 부릅니다. 특히 청각장애 아동의 경우, 감정을 명확히 분류하고 설명하는 언어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감정을 신체적 표현이나 시각적 상징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동시에, 정신분석학에서는 ‘침묵’이 반드시 비소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오히려 침묵은 말보다 더 깊은 정서를 함축하기도 하며, 이는 ‘전언어적 애도(preverbal mourning)’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즉, 언어 이전의 방식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상실을 느끼고 애도할 수 있습니다.

《원더스트럭》은 이 과정을 시각적 언어와 공간적 교차 구조로 언어 없이도 깊은 감정이 전달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건 곧, 우리가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 언어만이 유일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 심리학과의 연결 분석

 
영화 속 벤은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난 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뉴욕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여정을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시작하게 되죠. 그에게 감정은 말로 표현되지 않으며, 오히려 시선, 행동, 공간의 이동을 통해 애도의 여정을 실현합니다.

로즈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관찰자’로서의 자신을 유지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욕망을 스케치북과 미니어처 건축에 투영합니다. 그녀의 감정은 손을 통해, 공간을 통해, 그리고 물리적인 구조물을 통해 전해집니다.

두 아이는 말은 없지만, 동일한 애도의 감정과 연결 욕구를 공유합니다. 그들이 찾고 싶었던 건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줄 수 있는 한 사람, 그리고 말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언어적 애도’와 완벽히 맞닿아 있습니다. 이들은 언어 이전의 감각, 눈빛, 접촉, 기억의 흔적으로 애도를 완성하고, ‘침묵의 관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복원해 갑니다.

영화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조우는 말보다 더 깊은 공명을 전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를 ‘이해받은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 우리가 함께 던져볼 질문

 
- 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전하려 했을까?
- 내 상실의 감정은 정말 충분히 애도된 걸까?
- 나는 누군가와 침묵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느껴본 적이 있을까?
- 언어 외의 감각, 행동, 공간 속에서 감정을 경험한 적이 있었을까?

🎬 우리가 배운 마음

 
우리는 때로 말이 아닌 방식으로 마음을 전합니다. 손짓, 눈빛, 오래된 물건, 혹은 그 사람이 걸었던 장소처럼, 언어보다 더 깊고 오래 남는 감정의 표현이 존재하죠.

《원더스트럭》은 '말할 수 없음'이 '전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 가장 큰 감정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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