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기억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로 남는 걸까?
“사라져가는 것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기억을 통해 자신을 규정합니다.
어떤 일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나’라고 부르죠.
그런데, 만약 그 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져간다면?
말하고 싶던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조차 흐릿해진다면?
《스틸 앨리스》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 오늘의 영화: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2014)》
앨리스는 콜롬비아대 언어학 교수입니다.
그녀는 뛰어난 학자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 한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녀의 인생은 언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 쓰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앨리스.
하지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되면서 그녀의 세계는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무너져갑니다.
🧱 감정의 흐름으로 본 앨리스의 여정
- 도입 – 안정된 삶 속 성취감: 가정과 학문 모두에서 존중받는 삶
- 진단 – 알 수 없는 불안의 시작: 이름을 잊고, 길을 잃는 자신
- 초기 확대 – 단어의 상실, 언어의 붕괴: 자아 정체성의 균열
- 중반 위기 – 가족 앞에서 무너지는 통제감, 공개 강연에서의 눈물
- 관계 재정비 – 남편의 거리두기, 딸 리디아와의 감정적 회복
- 자아 해체 – 자기 얼굴조차 낯설어지고, 영상 속 '내가 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함
- 잔존과 희미한 사랑 – 모든 것이 사라진 끝에 남는 단어, “사랑”
🎬 감독의 의도와 배우의 접근
공동 연출자 리처드 글랫저는 루게릭병(ALS) 투병 중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언어 기능과 운동 능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과정을 겪고 있었고, 영화는 단순한 병의 묘사가 아니라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로 기획되었죠.
줄리안 무어는 실제 환자들과 교류하며 앨리스를 체화했고, 극 중의 작은 표정, 음성의 변화, 손의 위치 하나까지 계산해서 연기했습니다.
“이건 질병 영화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영화입니다.” – 공동 감독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 나는 점점 사라지지만, 아직 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앨리스가 스스로를 위한 영상 유서를 준비하는 순간입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침대 서랍에 숨겨둔 약을 먹으라는 ‘이전의 나’가 ‘지금의 나’에게 남긴 말.
하지만 그녀는 약을 찾다가 중간에 방을 나가버립니다. 왜 나갔는지도 잊은 채.
그 장면은 영화 전체의 질문을 집약합니다.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나는 사라지는 걸까?”
영화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감정과 관계, 사랑이라는 것만이 남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 딸과의 마지막 장면
딸 리디아가 연극을 읽어주는 장면, 앨리스는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느낍니다.
리디아가 묻습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알겠어?”
그녀는 어렵게 한 단어를 뱉습니다.
“사랑”
그건 대사도, 줄거리도 아니었습니다.
앨리스는 딸이 자신에게 쏟은 감정을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감정의 언어를 어떻게 끝까지 붙잡고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 Q. 기억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로 남는 걸까?
우리는 이름, 직업, 성격, 취향으로 스스로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마지막 언어는,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
🎥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
《스틸 앨리스》는 '기억'이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가 흔히 믿고 있는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그 안에서 진짜 남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 영화입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남고, 말이 사라져도 관계는 이어지며, 사람이 사라져도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